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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번역? 영상번역?
번역을 분야별로 분류하면 크게 영상번역과 출판번역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언뜻 보기에는 출판번역보다 영상번역이 쉬워 보일지도 모르지만, 번역이란 타국의 문화나 표현을 자연스러운 우리말로 옮기는 작업이기에 기법의 차이가 있을지언정 더 쉬운 분야는 없죠.
굳이 구분하자면 우리말 실력, 외국어 이해력, 해당 분야에 대한 지식 등이 번역가에게 필요한 공통조건이며 그중에 영상번역을 하려면 순간적인 센스 즉, 순발력이 필요합니다. 마감 기한이 대략 3개월 이상인 출판번역은 시간을 두고 몇 번씩 문장을 고치고 다듬을 수가 있지만, 최소 며칠 간격으로 마감이 돌아오는 영상번역은 순간적으로 대사를 만들어내는 동시에 더빙대본이나 자막대본의 형식을 갖춰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거든요.
출판번역은 어렵고 힘들어 보이고 어쩐지 쉬울 것 같아 영상번역에 눈을 돌리는 꼼수는 결국 통하지 않을 거란 뜻입니다. 일단 운 좋게 일을 시작해도 금방 한계에 부딪히죠. 시간은 없는데 적절한 대사 한 마디가 떠오르지 않아 괴로움에 몸부림을 칠 게 뻔하니까요. 급하니까 일단 들리는 대사를 그대로 번역할 수도 있겠지만, 완성도가 떨어지는 대본을 내놓는 번역가는 생명력이 길지 않을뿐더러 혼자 하는 작업인 만큼 자기발전이 없다는 더 무서운 결말이 기다릴 겁니다.
출판 번역은 영상번역과 비교하면 원고지 800매 이상의 분량을 일관된 번역 문체로 글쓴이의 의도를 살려야 하기에 지구력과 인내력이 특히 요구된다고 할 수 있겠죠.
출판번역이든 영상번역이든 그 나름의 매력과 장단점이 있으니 학습하고 연습해보면서 본인에게 잘 맞는 분야를 찾는 것이 나에게 맞는 번역을 찾는 방법입니다.
한 마디 덧붙이자면, 모든 일이 그러하겠지만 번역 또한 내가 보려고 하는 만큼만 보입니다. 잘하려고 하면 할수록 어렵고, 번역물을 다시 볼 때마다 만족스럽지 못한 부분, 잘못된 부분들이 어김없이 눈에 들어오죠. 간혹 시간 대비 번역분량이 늘었다고 만족하는 번역가가 있는데, 번역속도가 빨라졌다고 자만하지 않고 결과물의 완성도에 더 큰 만족을 느끼는 것이 이상적인 번역가의 태도일 겁니다. 정작 본인도 그렇게 하고 있느냐고 묻는다면 멋쩍게 웃겠지만요.  
 
일본어 영상번역가의 홀로서기
십여 년 전, 번역이라고 하면 출판번역이나 문서번역밖에 떠올리지 못했습니다. 한일 대중문화 개방이 본격화되기 이전이라, 일본 영상물은 교수님이나 선배들이 일본에서 직접 공수해오는 영화나 드라마 비디오테이프를 돌려보는 게 고작이었죠. 영상번역이라는 용어조차 생소했고, 1990년대 후반에서야 많은 일본 영화와 드라마, 애니메이션이 국내에 소개되면서부터 어렴풋이 ‘저런 번역(영상번역)’을 해보고 싶다는 마음을 품기 시작했으니까요.
다행히 〈러브레터〉, 〈철도원〉, 〈4월 이야기〉 등의 일본영화와 케이블TV용 일드와 애니메이션이 강세를 보이던 시절이라, 아카데미 졸업 이후에 일감을 찾기는 어렵지는 않았습니다.
사실 일본 드라마나 영화가 붐을 이루던 당시에 비하면 지금은 전반적으로 일을 찾기는 까다로울 수 있습니다. 일본 영화 등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시들해지면서 수입과 배급도 뜸해지고, 버라이어티 쇼·토크 쇼·코미디 등이 포함된 5차 일본 대중문화 개방 일정도 불투명하여 여전히 TV에서 접할 수 있는 일본 영상물은 제한적입니다. 게다가 한일 관계 악화라는 악재도 겹쳤으니 상황은 더 이상 설명할 필요도 없겠지요.
그러면 일본어 영상번역가가 되고 싶다는 꿈은 접어야 할까요?
글밥 아카데미에서 수업을 맡게 되면서 가장 큰 고민 역시 ‘이렇게 어려운 상황에서 일본어 영상번역가를 양성한다는 게 옳은 일일까’였습니다. 하지만 현재는 대중들이 전보다 다양하고 폭넓은 글로벌 문화를 수용하고 요구하는 시대지요. 지금은 주춤하고 있지만 스토리와 장르의 다양성 면에서 절대적 강자인 일본 영상물에 대한 수요는 끊이지 않을 것이고, 일본어 영상번역가 역시 계속 필요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이러니하지만 번역가로는 먹고살기가 쉽지 않아 생계유지를 위해, 혹은 또 다른 꿈을 위해 진로를 변경하는 이들도 많아 직업 번역가로 남는 경우가 드물다고 할까요. 무책임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어디선가는 분명히 나(준비된 영상번역가)를 찾을 거라는 소리입니다.
취업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라는 시대에 어쩌면 계약직보다 못한 프리랜서가 된다는 게 쉽지는 않겠지만, ‘이 일이 운명이다’, ‘계속 이 길로 가겠다’라는 신념을 따라간다면 어느새 어떻게든 일을 시작할 거라는 게 경험을 토대로 내린 결론입니다. 간절히 바라면 이루어진다는 게 바로 그런 얘기겠죠.
내가 일본어 영상번역가가 될 수 있을지 고민하기보다는 일단 배우고 느끼고 즐기면서 나에게 이 일이 맞는지, 낯설고 어렵겠지만 홀로서기를 준비할 만큼 열정을 쏟을만할지 가늠해 본다면 적어도 훗날 해보지 못한 것에 대한 미련을 갖지 않겠지요.
 
개인적으로 ‘나는 일본어 번역가입니다’라는 한 마디를 내뱉기까지 참으로 오랜 시간이 걸린 것 같습니다. 김춘수 시인의 〈꽃〉이라는 시처럼 누군가가 번역가라고 불러주기 전까지는 인식되지 않은 존재에 불과했다고 할까요. 일을 받을 때 ‘○○○씨’라고 불리다가 언젠가부터‘○○○번역가’라고 불리면서 번역가라는 의미를 부여받은 존재라는 느낌이 있었습니다.
특히 일본어 쪽은 고정적인 일감이 많지 않아 업체와 지속해서 인연을 맺기가 어려워 유대감을 갖기도, 존재감을 드러내기도 쉽지 않거든요. 물론 지금도 여전히 무명씨(無名氏) 번역가의 삶을 살고 있지만요. 하지만 화면에 펼쳐지는 영상에 어우러지는 우리말 더빙 대사나 자막 대사를 만들어 낸다는 짜릿한 매력이 척박한 업계의 상황 속에서도 번역을 끊지 못하고(?) 버티게 하는 원동력이 되고 있죠. 나에게만 맞는다면 운명처럼 빠져들 수 있는 보람과 즐거움이 있는 일인 것만큼은 분명합니다.
 
다가온 인연을 소중히 하고, 일을 맡았을 때 최선을 다한 결과물을 내놓는다면 좋은 결과가 뒤따를 겁니다. 누구나가 할 수 있는 얘기겠지만, 홀로서기 준비를 단단히 해야 하는 예비 일본어 번역가에게 그 이상의 충고가 있을까요.
 
* 글밥아카데미 일어 영상번역반 강사 윤혜원
글밥 아카데미 영상 일본어과정 강사 겸 출판번역과 영상번역을 병행하는 프리랜서 번역 작가로 활동 중
옮긴 책으로는 〈생각혁명〉, 〈우리집 채식레시피〉, 〈얼음의 나이〉 외 다수
영상 번역 작품으로는 〈꿈의 보석 프리즘스톤 시리즈〉, 〈날아라 호빵맨 시리즈〉, 〈빨간 머리 앤-네버앤딩 스토리〉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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