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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표를 냈다. 조직이라는 외투를 벗고 맨몸뚱이로 세상 앞에 섰다. 프리랜서, 올해부터 사원증 대신 나를 설명할 수식어. “회사가 전쟁터라면 밖은 지옥”이라던 <미생>의 명대사를 되뇌며 1년 동안 차근차근 준비했다. 단단히 마음먹고 업계에 뛰어들었는데, 웬걸,문제는 실생활에서 터졌다. 낮아진 신용도에 울고, 소득신고를 할 줄 몰라 헤매고, 갑갑한 방구석에 셀프감금 당했다. 커리어만 신경 썼지 생활 속 작은 변화에 무너질 줄이야. 인생은 늘 자잘한 돌부리에 채여 넘어지는 일의 연속. 프리랜서로 첫발을 뗄 때 알아두면 좋을 깨알만한 생활 팁을 모았다.
 
이명은
 
Money
“통장이랑 카드부터 만들어. 직장 없다고 발급을 안 해주더라.” 2년 전 회사를 관두고 영상번역 일을 시작한 옛 직장 동기의 귀중한 조언. 정말 그렇다. 프리랜서가 되면 명함 한 장으로 설명되던 내 신분을 아주 복잡하게 증명해야 한다. 신용이 필요한 금융업무는 퇴사 전에 처리하는 게 절대적으로 순조롭다.

은행업무 처리
마이너스통장은커녕 초등학생도 다 있는 입출금통장 만들기가 힘들다. 금융사기 피해가 늘어나면서 은행권 심사가 까다로워졌기 때문. 각종 증빙서류 요구는 기본이다. 앞서 말한 동기는 프랑스에서 쓸 통장을 만들기 위해 행원에게 비행기 e티켓까지 보여주었단다. 통장 개설이나 신용카드 발급 등 금융 업무는 가급적 퇴사 전에 미리 처리해 두자. 금융상품의 가입 조건도 꼼꼼히 살펴야 한다. 가령 올해 도입된 만능통장(개인자산종합관리계좌)을 보자. 예・적금과 펀드 등 다양한 금융상품을 한 계좌로 관리하며 250만원까지 비과세 혜택을 누릴 수 있는 절세상품인데, 프리랜서는 기타소득자로 가입대상에서 제외된다.

실업급여 체크
원칙적으로는 비자발적인 이유로 퇴사한 경우에만 신청할 수 있지만, 회사에서 직원이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도록 조치해 주기도 한다. 미리 인사팀에 문의해 볼 것. 고용보험법 개정안에 따르면 올해부터 실업급여 수급 정책이 바뀐다. 좋은 소식부터 전하자면, 실업수당 지급 상한액이 하루 4만 3천원에서 5만원으로 올랐다. 수급 기간도 기존 90~240일에서 120~270일로 한 달씩 연장됐다. 대신, 하한액이 최저임금의 90%에서 80%로 하향 조정된다. 저임금 노동자에게는 불리한 변화다. 수급요건도 까다로워졌다. 구직활동 증빙이 4주 1회에서 2주 1회 제출, 구직활동은 월 2회에서 주 1회로 늘었다. 실업급여 부정 수급을 막고, 실직자에게 보다 적극적인 구직 노력을 요구하려는 조치다.

5월은 소득신고의 달
직장인의 1월은 연말정산과 함께였지만 프리랜서는 5월에 종합소득신고를 한다. 연간 소득금액 합계액은 국세청 홈택스(www.hometax.go.kr)에서 확인할 수 있다. 홈페이지에서 사업소득 원천징수영수증을 발급받은 뒤 금액을 모두 합산하여 종합소득세를 신고하면 된다. 직장인의 월급명세서는 4대 보험에 소득세, 지방소득세, 사우회비까지 이것저것 떼는 게 많아 복잡했다. 반면 프리랜서의 세금은 간결하다. 소득이 발생하면 원천징수 3.3%를 뗀다. 이렇게 미리 납부한 세금은 기납부세액으로 신고한다. 한 가지 팁, 소득신고 시 필요경비를 공제받을 수 있다. 일하면서 지출한 교통비와 통신비 등의 사용내역 증빙(계산서, 영수증 등)을 잘 챙겨 두었다가 신고하면 경비로 인정되어 해당 금액만큼 공제된다.


Space
포근한 침대, 꼬리 치는 반려견, ‘무도’의 유혹을 뿌리치고 일에 집중할 자신 있는지? 재택근무, 쉽지 않다. 한 공간에서는 노동시간과 휴식시간을 분리하기 어렵다. 작업실을 구할 여력을 갖출 때까지 자신에게 알맞은 노동공간을 찾아야 한다.

공공도서관
정보력은 프리랜서의 자산, 따라서 공공도서관은 최적의 근무지다. 간행물열람실에서 잡지와 신문을 마음껏 읽고, 각종 도서와 전자정보를 손쉽게 열람하고, 필요한 자료를 복사할 수 있다. 정보실에서 컴퓨터를 사용해도 된다. 희망도서를 신청하면 새 책을 가장 먼저 읽을 수 있다. 다양한 문화강좌를 저렴한 비용에 수강할 수 있다. 이렇듯 정보 접근성이 좋으면서 무료인 공간도 드물다. 게다가 조용하고 아늑하기까지. 도서관마다 개성과 환경이 다르니, 여러 곳을 둘러보고 자신에게 맞는 장소를 고르도록 하자. 소정의 발전기금을 낸 졸업생에게 도서관을 개방하는 대학도 있으니, 모교에 깃든 추억이 많다면 고려해 볼 것. 대학가 근처는 밥값도 저렴하다.

코워킹 스페이스
다양한 분야에서 독립적으로 작업하는 사람들이 모여 일하는 공유 공간이 국내에도 자리 잡았다. 일종의 공공사무실. 각자 일을 하되, 한 공간을 나눠 쓰면서 서로 교류하고 정보를 얻으며 시너지를 낸다. 누구의 간섭도 없이 내 일을 하면서도 고독하지 않을 수 있다니, 참으로 매력적인 일터다. 한 달 이용료는 대략 10~15만원 내외. 사무실 임대료에 비하면 꽤 저렴한 데다 팩스와 복사기 등 사무기기도 구비되어 있다. 커피 한 잔 값으로 공간을 이용할 수 있는 카페형 코워킹 스페이스도 늘어나는 추세. 시청 인근의 ‘스페이스 노아’, 역삼동 ‘마이크임팩트 스튜디오’, 선릉역 ‘스페이스332’, 성수동 ‘카우앤독’ 등이 성업 중이다. 구로에 위치한 카페 ‘무중력지대’는 서울시가 운영하는 청년 공간으로 평일 24시간 개방하며 이용은 무료다.


Attitude
필드에 적응하지 못한 프리랜서 초창기에는 ‘속 빠진 만두피’처럼 자아가 쪼그라들기 십상. 일감은 들쑥날쑥하고, 지갑은 얄팍해진다. 업무 관계에서는 노상 ‘을’ 혹은 ‘병정’에 자리 잡고, 말과 행동을 부단히 단속한다. 여유를 잃고 조급해진다. 일희일비하지 않고, 긍정적인 마인드를 유지하는 법을 익혀야 한다. 그래야 긴 호흡으로 커리어를 다질 수 있다.

당장은 연봉생활자 시절의 수입을 회복하기 어렵다. 마지막 봉급과 퇴직금으로 버티며 미래에 투자하는 시간이라고 생각하자. 그래도 허전한 호주머니 때문에 마음까지 쭈그러들진 마시길. 우리는 얼마든지 우아하게 (상대적으로) 빈곤해진 생활을 영위할 수 있다. 몰락귀족 가문 출신으로 가난에 일가견이 있는 독일 저널리스트의 노하우가 담긴 책 <폰 쇤부르크 씨의 우아하게 가난해지는 법>을 읽어 보길 권한다. ‘가난해진 사람이 좋은 컨디션을 유지하는 방법’, ‘아둔하지 않게 쇼핑하는 방법’ 등 무릎을 탁 치고 실생활에 바로 적용해 봄직한 조언이 가득 담겨 있다.
집단지성의 힘을 빌리는 건 어떨까. 염리동에 위치한 독립서점 ‘퇴근길 책 한잔’에서는 종종 ‘자발적 거지모임’을 연다. 전직 거지, 현직 부르주아 등이 모여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내는 법을 도모하고, 물질에서 자유로운 공동체적 삶을 모색하는 자리다. 프리랜서를 선택한 계기로 그동안 몰랐던 새로운 삶의 양식을 발견할 수도 있을 것이다.
평일 런치메뉴 먹기, 주중 조조영화 관람 등 봉급생활자가 하기 힘든 여가생활을 누리는 것도 기분전환에 도움이 된다. 마지막으로, 월요일에 여행을 떠나자. 부디 밥벌이에 치여 프리랜서라서 누릴 수 있는 소소한 행복을 놓치지 말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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