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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예지
 
서른이다. 스무 살을 맞이할 때와는 천지 차이다. 설레거나 기다려지는 것이 없다. 스물아홉 내내 질풍노도를 겪었다. 불안한 마음에 월급의 80퍼센트를 조각조각 내서 적금을 부었다. 직장 후배들이 고민거리를 털어놓을 때마다 현명한 답을 해주려고 인터넷을 뒤졌다. 숨이 턱 끝까지 차는 것처럼 바쁘게 배울 거리를 찾아다녔다. 그러다 보니 오히려 숨통이 막혔다. 이런다고 뭐가 달라질까. 20대를 잘 정리해두는 편이 나았다.

나의 20대는 채널 수만큼 다양했다. 첫 연애가 끝난 후 술을 퍼마시고 대로변에서 고래고래 노래를 부르는 게 일과였다. 아빠가 똥구녕이 보인다며 노심초사하셨던 미니스커트를 입고 돌아다녔다. 오랜 단짝 친구가 내 남자친구를 뺏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했다는 것을 알고 세상에 없는 사람처럼 일 년 동안 봉사활동만 다니기도 했다. 느닷없이 전공을 바꿔 얌전하게 공부만 하다 병원에 취직해 주위 사람들을 놀라게 했고. 엄마의 수술실 앞에 쪼그리고 앉아 기다리다 울고 또 기다리기를 반복한 적도 있다. 그리고 다시 글을 쓴다고 쫄래쫄래 다닌다.

수많은 일 중에서 나를 가장 바꿔놓은 것을 딱 하나만 짚어보라고 한다면 망설임 없이 피부다. 스물다섯, 무더위가 조금씩 가라앉는 날씨였다. 얼굴에 붉은 반점이 몇 개 올라와서 피부과를 갔다. 단순 염증이라는 말에 항히스타민 주사와 약을 처방받고 나왔다. 며칠 지나니 반점이 열 개가 넘었다. 다시 병원에 방문해서 주사랑 약을 받았다. 그 이후 간질간질해서 팔을 들어보면 빨간 반점이 스무 개, 오십 개. 초등학교 때 앓던 건선이 항히스타민 성분에 긴 잠복기를 끝내고 튀어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지난 십 년간 모았던 원기옥이 폭발하는 것처럼.
아침이 두려웠지만 참을 수 없는 가려움에 눈이 떠졌다. 옷을 벗으면 기형적으로 빨리 자란 각질이 후두둑 떨어지고. 대학병원에 가서 조직검사를 하고 레이저치료를 받아도 달라지는 게 없었다. 건조해서 로션을 바르면 따가워 눈물이 나왔고, 따가워서 로션을 바르지 않으면 간지러워 눈물이 나왔다. 버스를 타면 사람들이 피했다. 지하철에서는 아줌마들이 참견을 했다. 피눈물이 흐르는 것처럼 볼을 가로질러 일자로 내려오는 상처가 신기했겠지. 그러나 옷으로 감싼 몸을 보면 참견할 수 없었을 거다. 집 안에 있는 모든 거울을 없앴다.

1년이 지났지만 양방 치료는 크게 효과가 없었고 한방에서는 치료를 맡기 꺼려했다. 일반 시중에서 파는 보습 제품은 화학성분이 포함되어 자극이 심해 악순환을 가져왔다. 지쳤다. 그래도 손을 놓아버릴 수는 없다. 나는 우예지고, 우리 엄마 딸인데, 내가 엄마의 자랑인데.
스스로 치료하기 시작했다. 차례차례 바꿔나갔다. 피부 재생 세포가 활발히 움직이는 밤 열 시부터 새벽 두 시에는 반드시 숙면을 취하려고 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에 새벽에야 잠이 들었지만. 아침에는 일찍 일어나 30분 이상 스트레칭을 했다. 처음 한 달 동안은 매일 울면서 몸을 찢었다. 가만히, 그리고 천천히 움직이는 내내 나를 보던 사람들의 눈빛, 수군거리는 말소리가 떠올랐다. “지지 않아. 지지 않을 거야. 절대 안 져.” 숨을 내쉬고 자세를 잡으며 되뇌곤 했다.

물은 하루에 2리터씩 마셨다. 화장실 가는 게 번거로웠지만 소변을 볼 때마다 나쁜 병균이 한 개라도 빠져나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스트레스를 받을 때마다 매운 음식이 당겨 먹으러 가면, 얼굴이 화끈거리면서 온몸에 붉은 기가 올라와 두 입을 넘기지 못했다.
그리고 엄마의 밥. 엄마는 매일 내 몸을 보면서도 한 번을 울지 않았다. 반신욕을 하고 나와 벌거벗고 앉아서 주술을 걸듯 코코넛 오일을 바르는 내가 미치광이 같았을 텐데. 갓 태어난 아이 같은 뻘건 몸뚱이로 사는 딸이 무서웠을 텐데. 다만 매일 도시락을 싸주었다. 설탕 대신 사과를 갈아 간을 맞추고, 딸랑거리는 종소리가 들리면 두부를 사러 나갔다. 정안수에 비는 마음으로 두부를 지졌겠지.

밖에 나갔다 들어오면 무심한 척 TV만 보고 있었지만 눈길은 샅샅이 나를 좇아 훑었다. 어디서 험한 말을 듣고 오는 건 아닌지. 우두커니 서서 자고 있는 나를 보는 날이 많았다. 심연이 느껴질 만큼 오랜 시간을. 하지만 결코 내게 위로를 건네거나 재촉하지 않았다.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내가 조금이라도 늦게 오는 날이면 아픈 다리를 질질 끌며 이 골목 저 골목을 기웃거렸을 거다. 어디서 쭈그리고 앉아 울고 있을까 봐. 비닐봉지 버스럭거리는 소리에도 화들짝 고개를 돌렸을 거다. 영영 집으로 돌아오지 않을까 봐.
지구를 아낀답시고 쌀뜨물에 미생물을 혼합한 EM활성액을 만들어 비누 대신 사용하면서도 나 자신을 내팽개쳐버리고 싶은 날이 많았다. 다른 사람들이 경우 없이 얘기할 때면 “괜찮아, 몰라서 저러는 거야.”라고 두둔하면서도 나 자신을 바보, 천치, 머저리 같다고 여겼다.
많이 미웠다. 모자란 돈을 구하느라 컴컴한 새벽에 이삿짐을 올리던 날, 수술 후 엄마가 마취에서 못 깨어난다는 간호사의 부름에 후들거리며 병실 안으로 들어갔던 날도 이를 악물고 버텼는데. 이렇게 무너지는 내가 원망스러웠다. 팔당댐 앞에서 멍하니 앉아 있다 돌아왔다. “그래도 살아야지, 살아봐야지.” 다짐했다. 여러 번 계절이 바뀌자 발진이 잦아들었다. 두 해가 지나니 민소매를 입을 수 있을 만큼 반점이 군데군데만 남아있다.

서른을 앞두고 많은 것이 변했다. 벅찬 일들을 이겨내고, 이해할 수 없던 일을 받아들이면서. 아마 가르쳐주고 싶었던 것일 게다. 앞으로 살아갈 긴 시간 동안 어떤 소신을 지키며 살아가야 하고, 무엇을 우선순위에 둬야 하는지. 꾸짖고 싶었던 것일 게다. 멋진 인생 살고 싶다더니 왜 생각 없이 하루하루만 보내고 있느냐고, 네 뜻이 아닌 세상 뜻대로 사는 바보가 되었느냐고. 깨닫고 지나가라고 일어난 일일 게다. 태어나지도 않은 손주의 물 부족을 걱정하느라 세탁기에서 나온 물을 받아 걸레를 빠는 엄마의 마음을. 못나고 부족한 내가, 이대로 서른을 맞이하면 안 되겠다 싶어 생긴 일이었을 게다.

허연 각질이 총총히 달려있던 몸이 매끈해졌지만 밤 열두 시가 넘기 전에 잠든다. 매일 아침 스스로를 응원하며 스트레칭을 하고. 환경을 지키기 위해 무거운 도시락 통을 들고 출근한다. 국물은 마시지 않고, 채소는 하나씩 더 집어 먹는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을 보면 한 템포 쉬고 일단 웃는다. 간단한 방정식 같은 습관들이, 함수처럼 복잡한 이 세상에서 나를 예쁘게 나이 먹도록 지켜줄 것이다. 나는 이제 서른이 두렵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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