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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채
 
내 인생의 문. 그 문이 닫히고 있었다. 20대 중반에 갑상선항진증 진단을 받다니, 우리 할머니가 70대에 얻은 병명인데. 나는 열심히 살았다. 회계학과 경제학을 4년 동안 열심히 공부했다. 적성에 맞지 않는 걸 알았지만, 진로를 바꾸기에는 이미 늦었다고 생각했다. 취업이 보장될 거란 언니의 조언을 따랐다. 한 외국계 기업에 취직해 매일같이 밤 12시까지 일했다. 신입사원인 나는 어떻게든 적응하고, 자리를 잡으려고 주말도 없이 일했다. 그러다가 목이 튀어나왔다는 언니의 말에 병원을 갔다. 별수 없었다. 내 몸이 말하고 있었다. “여기를 떠나, 여긴 너의 직장이 아니야.”
신이 한쪽 문을 닫을 때는 다른 한쪽 문을 열어둔다고 하던데, 열린 문을 찾을 수가 없었다. 닫히는 문을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다. 무작정 여행을 가야지 생각했다. 일하는 중에도 틈만 나면 미술관에 들르곤 했는데, 그때 보았던 작품들이 그려진 장소에 가보고 싶었다. 화가들이 사랑했다는 아름다운 남프랑스를 직접 보고 싶었다. 유로 환율이 최고로 치솟은 2007년 가을, 약을 바리바리 싸들고 짐을 꾸렸다. 서울에 말했다. 안녕!
 
 
기대되고 설렌다. 약 9시간을 날아 도착하게 될 여행지는 니스! 여유롭게 지중해 연안을 느끼려는 계획이다. 이곳에는 화가들의 별장이 유독 많았다. 멋진 작품이 탄생한 따스한 남프랑스를 느낄 수 있게 되다니! 또 마티스와 샤갈 미술관이 있다. 파리에 내려 갈아탄 니스행 비행기에서 창가를 고집했다. 여행객들이 입을 모아 칭찬하는 눈부신 지중해를 보기 위해서다. 착륙할 무렵, 가슴 벅찬 감동을 느꼈다. 니스 해변에서 발을 담았다. 역시 외국이다 싶었던 건, 아무리 배가 많이 나와도 비키니를 입고 즐긴다는 것. 그러니 다음번에는 두려워 말고 꼭 비키니를 챙겨 가야지!
 
니스의 한 호스텔에서 아주 멋진 친구 캐시(Cathy)를 만났다. 호주에서 온 19살 아가씨. 6개월 동안 회사에서 일하며 번 돈으로 6개월 동안 유럽을 여행할 계획이라고 했다. 와우! 얼마나 어메이징한가. 나는 20대 중반이 되어서야, 한 달짜리 여행도 두려워 한국에서 미리 같이 여행할 사람을 온라인으로 찾고, 자동차 여행을 계획하는 등 모든 일정을 미리 정하고 왔다. 캐시를 만나고 나서야 내 계획이 얼마나 큰 실수였는지 깨달았다. 그녀와 니스의 곳곳을 둘러보는데 어찌나 재미있던지. 한국에서 미리 계획만 안 세우고 왔더라면 그녀와 6개월을 함께 여행할 수도 있었다. 아니, 더 길어질 수도 있었다. 소심한 마음은 이렇게 기회를 막는다. 어쩌면 성장도 막는다. 계획하지 않고, 길 따라가는 여행을 통해 어쩌면 지금과는 다른 내가 되어있을 수도 있을 텐데! 처음이라 시행착오가 있었다. 하지만 덕분에 여행의 의미를 새롭게 정의내릴 수 있게 되었다. 계획을 세우고 온다면, 여행보다는 ‘관광’이라고 말해야 옳다. 진정한 여행이란 마음이 이끄는 대로, 길이 이끄는 대로 새로운 사람들과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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