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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가 밝았다. 올해였던 작년을 과거로 분류하고 미래였던 내년을 올해로 맞이할 시간이다. 한동안은 헤맬 것 같다. 서류에 ‘2015’라고 적거나 내 나이를 한 살 낮춰 소개하면서. 하지만 금방 적응할 터다. 현재는 과거로, 미래는 현재로 자연스레 움직이니까. 마냥 설레고 새롭던 처음이 언젠가 익숙한 추억이 되듯이 말이다. 새해를 열며 어느덧 추억이 된 첫 순간을 떠올려 보았다.
 
이명은
 
#1993 #국민학교 #조다쉬가방 #김민재아동복 #우등생체육복 #보온도시락 #급훈 #슬기롭고성실하게
국민학교 입학 전날. 머리맡에 새 옷과 책가방을 가지런히 포개 놓고 잠자리에 누웠다가 벌떡 일어났다. 엄마가 떠준 노랑 스웨터랑 주름치마, 망토 달린 빨강 코트. 이미 몇 번을 입고 벗은 옷을 살금살금 또 꿰어 입고 쪼그려 앉았다. 딸깍, 네모난 책가방을 열어 깍두기 노트며 그림일기장, 알림장, 철제 2단 필통을 꺼내 늘어놓았다 차곡차곡 담았다. 내친김에 책 몇 권을 더 가져다가 넣고, 맨 위에 실내화 주머니까지 야무지게 포갰다. 빵빵한 책가방을 메보려다 발라당 뒤집어졌다. 필통 덕에 철그렁 소리가 퍼지고, 발칵 문을 연 엄마・아빠가 어이없다는 듯 웃는다. 발딱 일어나 머쓱하게 따라 웃던 나. 곧 책가방을 내던지는 기쁨을 알게 될 줄 그때는 몰랐다.

#1998 #아이디 #버디버디 #다모임 #지뢰찾기 #하두리 #화상캠 #밤새지마란말이야
barbidoll. 14살 때 처음 만든 아이디. 바비인형이란 뜻도 창피한데 스펠링마저 틀렸다. 어쩌랴, 오타를 깨달았을 땐 이미 여러 사이트에 줄줄이 로그인한 상태. 중학교 2학년 때부터 본격적으로 인터넷에 빠졌다. 하굣길마다 친구들과 우르르 PC방으로 몰려가 야후! 연예인 기사를 읽고 하두리 채팅을 하다가 급 벙개를 쳤다. 테트리스 게임도 했다. 중수 나부랭이였던 나는 지존인 친구를 부러워했다. 다음카페에 가입했다. 자유게시판에다 원태연의 시 구절을 베껴 적었다. “손끝으로 동그라미를 그려 봐. 그걸 뺀 만큼 널 사랑해.” 사이버 세상에 현실의 나와는 다른 정체성이 조금씩 쌓였다. 서른두 살 먹은 지금도 이 철자 틀린 아이디를 버리지 못하는 이유.

#1999 #플립폰 #폴더폰 #018 #019 #걸면걸리는걸리버 #잘자내꿈꿔 #티티엘소녀 #홀맨 #비기 #매직앤
아빠의 카폰은 그리 탐나지 않았다. 안테나를 매달아 놓은 검정 벽돌 같았으니까. 하지만 기술의 진보는 놀라웠으니, 곧 얇고 가벼운 휴대전화를 손에 쥐었다. 여름방학 때 한국통신(현재 KT) 대리점에서 016 번호로 개통한 애니콜 플립폰. 플라스틱 뚜껑을 딸깍 내리면 자판에 녹색불이 켜졌다. 우린 전화보다 단문 메시지를 사랑했다. 어른들은 우릴 ‘엄지족’이라 불렀다. 한글 40자를 전송하는 데 30원쯤 했나. 비기 청소년 요금제를 썼는데 ‘알’이 떨어지면 ‘016-1513’을 눌러 엄마 몰래 충전을 했다. 천지인 자모를 꾹꾹 눌러 공백 없이 다닥다닥 주고받던 수다. 보관함에 담아 놓고 읽고 또 읽던 소중한 문자. 띠링, 띠링. 그 무렵 이불 속에선 밤새 단음 벨이 울렸다.

#2000 #러브레터 #쪽지예쁘게접는법 #남녀공학 #플레이팬 #투투데이
남녀공학 중학생 시절. 하루는 책상 서랍에 손을 넣었는데 웬 쪽지 한 장이 있었다. 공책을 찢어서 악필로 꾹꾹 눌러쓴, 대각선 뒤에 앉은 남자애가 보내온 일종의 러브레터. 나는 너와 친해지고 싶고 중1 때 같은 단과학원 다닌 걸 기억하니 어쩌고저쩌고. 얼굴이 발개졌다가 뒤통수가 뜨거워졌다. 눈을 마주치면 어쩌나. 고개도 못 돌리고 결국 사물함에도 못 갔다. 국사 시간에 노트를 찢어 답장을 적었다. 그 애한테 관심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나도 친해지면 좋겠어.” 하고 적은 다음 펜으로 열심히 꾸미기까지. 팬시랜드에서 산 알록달록한 펜들이 교과서 대신 쪽지 위에서 예쁜 곡선을 그렸다,
 
#2004 #mp3플레이어 #아이리버프리즘 #256메가 #내손안에뮤직 #펌웨어 #소리바다 #벅스뮤직
한 살 터울 언니의 mp3플레이어에 군침 꽤나 흘렸다. 그 이상 세련될 수 없었던 아이리버의 입체 삼각 디자인. 용량이 무려, 128메가였다. AA건전지 덕에 꽤 무거웠을 텐데도 언니는 은빛 삼각기둥을 늘 목에 걸고 다녔다. 다음 해 나는 대학생이 됐고 아르바이트를 해서 처음 번 돈으로 mp3플레이어를 샀다. 거원의 U2. 512메가에 빨간 사각기둥이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선곡 리스트를 바꿨다. 유희열이 라디오에서 추천한 가수, 미니홈피 파도타기 하다 들은 노래, 멜론 TOP100 최신곡, 웨이브란 음악 웹진에서 소개한 인디밴드. 매일매일 512메가 어치의 멜로디를, 아니 감성을 빼곡히 채우던 시절.
 
#2009 #사원증 #신입사원 #취업뽀개기 #사람인 #닥치고취업 #취준생 #자소설 #SSAT #이상은높은데현실은시궁창
면접을 보러 가면 멋들어진 정장에 한 손에 테이크아웃 커피를 든 직장인이 그렇게 부러웠다. 그들을 더욱 빛나게 했던 건 목에 자랑스레 내건 ID카드. 미국발 서브프라임 모기지 쇼크가 우리나라 경제까지 움츠러들게 한 스물넷 겨울, 취업 전선은 그야말로 살얼음판이었다. ‘취업, 낙타가 바늘구멍 통과하는 게 더 쉬워’ 따위의 기사나 훑으면서 한숨을 푹푹 쉬었다. 이력서를 마구 뿌리고 서류심사에서 광탈하고 심신을 난도질당한 끝에 꿈에 그리던 ID카드를 목에 건 날은 그래서 더욱 잊을 수 없다. 바람이 매섭게 불었지만 사원증이 보이지 않을까 봐 코트 깃을 여미지 않은 채 회사 정문을 통과하던 때의 기분이란. 얼마 못 가 ID카드를 내동댕이칠 줄도 모르고.
 
#2015 #사표 #휴먼굴림체 #일신상의사유
삼십 대에 던진 첫 사표. 스물다섯과 스물여덟에 패기롭게 제출했던 사표와는 무게가 좀 다르다. 예전에는 불확실한 미래보다는 눈앞의 확실한 즐거움에 방점을 찍고 사표를 냈다. 한데 이번에는 불확실함부터 충분히 검토했다. 4대 보험 없이 어떻게 살지, 보험료와 연금저축을 어떻게 정리할지, 애인은 없지만 착실히 모아온 결혼자금을 깨야 할지, 명함 없이 나를 어떻게 소개할지. 긴 고민의 마침표를 찍고 세상 밖으로 나온 첫해. 불확실의 터널을 통과했으니, 이제부터는 확실한 희망을 건져 올릴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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