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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은 것도 가고 싶은 곳도 많았던 사람이 어어, 하다 정신 차려보니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게 되면서 좌충우돌 엄마로 살아온 이야기.
 
강명주
 
찰떡 아가가 오다
이상하다. 왜 안 하지? 흐릿하게 보일 듯 말 듯한 두 줄. 이럴 리가. 부정하기 위해 부랴부랴 향한 병원에서 들은 말. “8주입니다.” 허니문 베이비였다. 얼마 전 한 맺힌 사람마냥 술을 퍼마셨는데… 아이 걱정에 연신 떨어지는 눈물과 콧물. 이렇게 갑작스레 아기가 생길 줄이야.

내 사랑 금치찌개
입덧을 모르며 편히 살던 어느 날, 예상치 못한 장벽을 만났다. 신혼살림을 차린 곳은 알제리. 이미 다른 나라에서도 근무를 한지라 김치와의 소원함에 적응하고 있던 터. 그런데 난데없이 돼지고기가 들어간 김치찌개가 당긴다. 이슬람 국가인 알제리 어디서 돼지고기를 구하랴. 김치는 대체 어디서… 훌쩍거리며 김치찌개가 먹고 싶다는 마누라를 위해 어디서 어떻게 구했는지, 신랑이 김치와 돼지고기의 차선인 참치캔을 사서 찌개를 한 솥 끓여준 게다. 김치찌개를 3일 연신 먹어도 질리지 않던 나, 그에 반해 하루에 한 끼도 똑같은 식단을 먹지 않는 나의 신랑 얼굴이 어느새 누렇게 떴다. 미안해졌다. 그날 이후로 그 누구도 금치찌개를 찾지 않았다. 아이에게 우리가 사는 곳은 알제리라고 상기시키며 한국음식 찾으면 안 된다고 누차 일렀다.

야속한 만삭 임산부의 밤
침대에서 일어나 두 다리를 바닥에 내리고 상체를 일으켜 세우기가 백두산 올라가는 것 마냥 힘들다. 야밤에 화장실을 가려니 또 만리장성이다. 불룩 나온 배로 앉아 있으면 엉덩이뼈가 너무 아프고, 서 있자니 힘들고, 누워 있자니 불편하고, 대체 이 몸을 어쩌랴. 울 엄마는 어째 만삭의 몸으로 가파르고 좁은 계단을 오르내리며 물건을 이고 지며 장사를 했을까. 울 할머니는 어째 그 몸으로 전쟁통에 피난길을 걸으셨을까. 밤이 가는지도 모르게 자고 싶은데, 자꾸 일어나 화장실에 가고 또 가고. 자세를 바꾸다가 깨고. 눕자니 깊은 잠이 오지 않는 이 만삭 임산부의 야속한 밤이여. 드르렁드르렁 세상이 망해도 모를 듯 자는 신랑. 내가 내 눈을 찌른 게지. 누구를 탓하랴.

아이가 위험해요
10개월에 접어들기 직전 비행기를 타고 한국으로 왔다. 예정일을 며칠 앞둔 어느 날 새벽. 양수가 먼저 터졌다. 분만실에 누워 21시간 진통하며 열린 4센티를 끝으로 자궁은 더 이상 열리지 않고, 다리 감각은 사라지고, 아이의 심박 수는 0으로 계속 곤두박질치면서, 주치의가 아이와 산모 모두 위험하다며 수술을 하잖다. 수술하면 다둥이 엄마가 되는 데 제약사항이 많아진다고 들었기에 아이가 위험하다는데도 수술을 망설이는 주책 산모인 나. 이런 정신없는 여자가 곧 엄마가 될 것이었다. 의사 선생님이 당황하며 세상이 좋아져서 수술해도 낳고 싶은 만큼 낳을 수 있다고 안심을 시켜주신 다음에야 수술대 위로 올랐다. 얼마나 흘렀을까. 마취에서 깨어나 정신을 차리자, 벌겋고 팅팅 부은 얼굴의 아가가 포대기에 싸여 나에게 왔다. 그때의 그 감격을 잊을 수 있을까.

내가 미쳤지, 미쳤어. 어쩌자고 애를 낳았을까
아직 밤이라고 해줘. 잠을 못 자는 고통이 이리 가혹한 줄 알았더라면 애를 낳았을까. 출근 준비하며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콩쥐가 팥쥐의 부름에 밥 먹다 체하듯 끊이지 않는 딸아이의 부름에 밥숟가락 뜨기가 무섭다. 오늘도 보모 손에 맡기고 우는 딸아이를 뒤로 한 채 현관문을 닫는다. 헐레벌떡 도착한 사무실. 처리해야 할 업무 가지치기를 정신없이 해대고 있노라면 어김없이 울리는 전화. “명주 씨, 설마 또 잊은 건 아니겠지?” “예? 뭘 말씀이신지….” 아~ 까막까막 까마귀 고기를 삶아 먹었는지 상사의 지시가 한 쪽 귀로 들어와 소리소문없이 사라져버리는 이 황당함. “정말, 정말 죄송합니다.” 분명 상사 사무실 문을 닫고 나올 때까지 기억을 하는데, 메모를 했다는 사실조차 완전히 잊어버린다. 이뿐 아니다. 일 처리에 자꾸 자신이 없어진다. 전신마취와 출산의 후유증이 끝나긴 할까. 나 자신조차 감당하지 못하는 이 깜박 증세는 나아지긴 할까.

드라큘라, 당신을 사랑해요
아야~악. 요것이. 나도 모르게 젖 먹는 아이에게 손이 올라가려는 순간 정신이 든다. 자기가 한 짓이 뭔지도 모르고 배시시 웃는 딸아이를 보노라면 정말, 환장하겠다. 점심시간이면 사무실을 내팽개치고 집으로 달려가 젖을 물린다. 아이가 젖병을 보면 자지러져서 일명 직모, 젖으로만 먹여야 했다. 덕분에 매일매일 사무실-집-사무실-집의 삶이다. 헐고 찢겨 예민해진 젖꼭지 덕에 젖을 먹을 때 입가에 피가 묻은 딸아이를 심심찮게 보게 된다. 그런데 이상하다. 나를 이렇게 아프고 힘들게 하는데, 왜 나는 아프고 힘들다고만 느끼지 않는 건지…. 내가 미쳐가는 것 같다.

살고 싶어요. 아니 저 살아야겠어요
어느 날, 의사는 나에게 갑상선암이라 선고했다. 최근 지인이 갑상선암이 전이되어 세상을 떠난 안타까운 소식을 마주했던 터라 그 두려움이란…. 평소 신앙생활에서 오는 위안을 누리며 일찍 죽어도 아쉬울 것 없다며 자부하던 나였지만, 잠이 든 딸아이를 보고 있으니, 살고 싶다. 정말 살아야겠다. 옷을 벗고 광화문 광장에서 춤추면 살게 해주겠다고 하면, 그럴 수 있을 것만 같다. 수술 후유증으로 한동안 고생하고, 내 마음과 달리 몸의 한계로 휴직을 하면서 모든 것이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상황에 처해 구석으로 몰아쳐 진 다음에서야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 내가 누구인지. 지금 어디에 있는지. 이제 어디로 가야 하는지.

뷔페식대 내셔야 합니다
분위기 한번 내 보자고 찾은 뷔페. 여느 때처럼 실컷 먹자면서 자리 안내를 받는데, 매니저가 묻는다. “손님, 아이가 몇 개월이죠?” “네, 38개월이요.” “36개월 이상이면 식대를 내셔야 해서 6,500원 추가입니다.” 아뿔싸! 네가 벌써 38개월이구나. 세상에, 언제 이렇게 컸을까. 뷔페에 와서 네 식대 내기는 처음이다. 얼러서 재우고, 때마다 기저귀 갈고, 목욕통에 물 받아 씻기면서 언제 클까 했는데. 오늘 새삼스레 딸이 자라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이렇게 건강하게 잘 자라서 밥 먹기 위한 식대라면, 까짓 아까울쏘냐. 접시를 들고 음식을 담으러 가는 아이 뒷모습을 바라보며 어쩔 수 없는 아줌마의 근성이 나오긴 한다. 아, 그냥 36개월이라고 말할걸.

못해도 GO, 안 해도 GO
건강하게 잘 자라준 딸아이는 곧 47개월이다. 딸아이를 만나며 달게 된 ‘엄마’가 사실 아직도 어색하고 버거울 때가 있다. 엄마라는 직함을 벗어버리고 싶을 때도 정말 많다. 하지만 딸아이에게 한없이 고마운 건,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훈련을 하게 해 주는 것이다. 덜렁덜렁 정신없이 사는 덜렁이 엄마가 있어서 참 좋다고, 엄마가 제일 이쁘다는 딸아이 덕에 그래도 살맛이 난다. 오늘도 잠이 덜 깬 딸을 유모차에 태워 함께 칼바람 맞는 출근길에 이렇게 사는 게 맞는 건지 고민 또 고민, 정신없는 출퇴근길 뭘 먹여야 할지 고민 또 고민, 딸아이가 원하는 동생을 어찌할지 고민 또 고민하는 나는, 엄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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